2007년 9월 15일 토요일

TV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 랄프 베어

TV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 '랄프 베어'



랄프 베어는 1922년 독일에서 태어난 미국인 발명가다.

그는 많은 면에서 게임과 비디오 게임 산업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6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와 비디오 게임 산업

을 탄생시킨 랄프 베어에게 "비디오 게임의 혁신적이고 선구적인 창조,개발,상업화"라는 명목 하에

National Medal of Technology 메달을 직접 수여했다.





하지만 TV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인 그에게도 혹독한 시절이 있었다.

독일에서 태어난 베어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유태인 학교로 들어가야 했다.베어의 아버지는

신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가족은 베어와 함께 크리스탈나흐가 일어나기

두 달전,미국으로 피신했다.미국에서 베어는 묵묵히 공장에서 일하면서

20달러(1주일)의 품삯을 받았으며 그 돈으로 독학을 했다.


주1)크리스탈나흐는 1983년 11월 9일 나치가 독일 전역의 수만개에

이르는 유대인 가게를 약탈하고 250여개의 유대교 사원에 방화했던 날이다.


후에 그는 국립 라디오 대학을 졸업하고 1940년까지 라디오 수리공으로 일했다.



1943년 그는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그는 런던에 위치하고 있는

미육군 본부의 Military intelligence로 배정받았다.





1949년 베어는 미국 TV 기술 대학을 졸업하고 TV엔지니어링과 스튜디오장비부문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했다.후에 그는 로랄전자,와플러,트랜지트론에서 수석기술자로

일하면서 군용레이다 유닛과 TV 수상기를 개발했다.


1958년 그는 샌더스 에소시에츠에서 장비 설계 부장으로 활약했으며

1987년에 은퇴했다.

그가 1967년에 샌더스 재적 시절에 개발한 '브라운박스'는 세계 최초의 가정용 비디

오 게임기다.개량을 거듭하고 특허를 받은 브라운박스는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했다.




형편없는 마케팅이었지만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는 10만대나 팔려서

당시 콘솔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샌더스 에소시에이츠의

이윤도 이 당시가 가장 높았으며 10만대의 판매액은 베어를 부자로

만들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마그나복스 오딧세이 본체 사진


주2)왜 형편없는 마케팅이었냐하면 당시 TV 비디오 게임기의 등장에 높은

기대를 가지던 예비 구매자들의 대다수를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는 마그나복스 TV

에서만 돌아간다고 믿게 만들었기 때문이다.이후에 발매된 '퐁' 비디오 게임기는

어느 기종의 TV (흑백,컬러)에서나 돌아간다고 광고를 했다.



게임기와 함께 동시 런칭된 12가지의 게임들

게임 카트릿지의 모습

주3)샌더스 에소시에츠의 이윤은 마그나복스 오딧세이 런칭 때가 가장 높았다.

하지만 샌더스의 직원들은 비디오 게임 개발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베어는 첫번째 비디오 게임 광선총과 TV 비디오 게임기를 만들었다.

또한 첫번째 음악 게임은 아니지만,70년대 당시 유명했던 음악 게임

'사이몬'을 발명하기도 했다.이 게임은 음과 빛을 이용한 게임으로

세가에서 만든 스페이스 채널 5의 원조라고 부를 수 있다.

2006년에 그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자신이 만든 게임 하드웨어를

모두 기증했다.



TV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 '랄프 베어'에 대한 정리


1922년 독일출생
1938년 미국으로 이주, 국립라디오대학 졸업 40년까지 라디오수리공으로 일함
1943~46년 2차 세계 대전 참가
1949년 미국TV기술대학 졸업 - TV엔지리어링과 스튜디오장비부문 학사학위취득
1945-1950년 의학용품업체 '와플러'에서 수석기술자로 일함
1951-1952년 '로랄전자'에서 군용레이다유닛과 TV수상기개발, 이때 비디오게임에 대한 아이디어 구상
1952-1956년 '트랜지트론'에서 수석기술자로 일함
1956-1958년 '샌더스 어소시에이츠'에서 장비설계부장으로 일함
1967년에 TV 비디오게임 발명

랄프 H. 베어. 미국 뉴햄프셔 주 나슈아 시의 한 방위 산업 회사인 다니는 베어는 틈만 나면 공상에 빠져들곤 했다.

'이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의 머릿속은 남아 도는 폐품과 나사들에 대한 생각으로 항상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또 동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고, 항상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베어의 머리에 새로운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미국의 각 가정에는 텔레비전이 있다. 심지어 한 집에 텔레비전이 두세 대씩도 있다. 이렇게 많은 텔레비전을 다르게 활용할 수 없을까?'

베어는 항상 이 문제를 생각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뭔가가 꼭 있을 거야. 600만 대가 넘는 텔레비전, 이것을 잘 이용한다면 멋진 사업을 할 수 있어.' 이렇게 몇 달이 흐른 뒤였다.

베어는 뉴욕의 어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는 손자뻘 되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맞아! 게임을 하는 거야. 텔레비전으로 하는 게임. 얼마나 멋진가? 텔레비전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할거야."

베어는 기쁨에 넘쳐서 외쳤다. 집으로 돌아온 베어는 틈틈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게임 만들기에 열중했다. 얼마 후 패크맨이라는 이름의 게임을 만들었다. "자, 이것 좀 봐. 패크맨이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지? 이것은 간단한 움직임이지만, 곧 복잡한 동작도 나타낼 수 있어. 좋지?"

베어는 몹시 흥분해서 동료들에게 자랑했다. 그러나 베어의 게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속한 회사의 간부들이었다.

어느 날 아침, 베어는 자신의 작업실에 회사 간부를 초대했다.

"자, 한 번 해 보시겠어요? 제 동료들과 함께 만든 게임이랍니다."

베어는 자신이 만든 전자 사격 게임을 해 보도록 권했다. 그 간부는 처음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게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정말 재미있네. 이것을 텔레비전에 연결만 하면 되는 건가?"

"예. 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참 유익할 겁니다. 지원해 주실 거죠?"

"좋아요. 단, 이 작업은 비밀리에 해야 합니다."

베어와 그의 동료는 기뻐서 소리를 질렀다. 이후 열심히 게임 개발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1967년에는 패드볼 게임과 하키 게임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5 년 뒤인 1972년 4월 25일, 그는 특허청으로부터 특허품으로 등록되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그 해 봄에는 마그나 복스사를 통해 '오딧세이'라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을 보급했고, 약 10만 개를 팔았다. 오늘날 전자 오락이라는 이름으로 전세계 완구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비디오 게임. 이것은 한 노인의 지치지 않는 관찰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 꿈의 기계였다.


출처
위키피디아와 세계적 특허발명 이야기 (서적)와 IGN


주4)랄프 베어의 투쟁은 쉬운 게 아니었다.놀란 부쉬넬이 만든 퐁과 베어가

만든 테니스 게임은 비슷하다며 한동안 소란이 되었으며 다음 세대에선

콜레코,마텔,시버그,액티비전같은 대형 회사들이 마그나복스에 소송을 가했다.

게다가 1985년 닌텐도는 랄프 베어의 발명품은 무효라면서 1958년에

만들어진 윌리엄 히긴보섬의 'Tennis For Two'가 첫번째 비디오 게임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윌리엄 히긴보섬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로 보면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닌텐도는 법정에서 패하고 만다.

닌텐도는 그전에 1975년에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를 일본에 발매했지만

대참패를 당하고 만다.(닌텐도는 자신만의 콘솔을 가지기 전에 이미

아타리 2600,콜레코비전 등의 미국 콘솔에 자사의 게임을 제공했던 시절도 있었다.)



------------------------------------------ 루리웹의 '바람과 구름과 별' 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

루리웹의 '바람과 구름과 별' 님께서 쓰셨던 비디오 게임의 역사의 두번째 부분입니다.

본편은 따로 나뉘어져 있고, 이 글은 랄프 베어의 이야기를 다루는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국내에도 랄프 베어같은 인물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우리나라에 크나큰 이익이 생겼을지 생각하면

정말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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