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18일 화요일

TV 비디오게임의 아버지를 직접 만나다.

GOODDEALGAMES의 JoAnn Thomasson

아타리 2600,인텔리비전 등의 콘솔을 즐겼던 고전 게이머들의

의견에 따른다면 나는 아마도 'non-gamer'로 정의될 것이다.

나는 인텔리비전과 함께 자랐고 현재는 남편과 함께

클래식 게임 엑스포에 참석하기도 했다.


확실히 나는 고전 게임을 많이 알고 있지 못했다.

하지만 GOODDEALGAMES의 마이클 (현재 남편)과 결혼하면서 나는 고전 게임에

보다 깊이 관련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랄프 베어'의 이름을 들었을때,나 자신의 좁은 지식에 대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그가 발명했던

최초의 콘솔인 브라운 박스나 고전 게임 역사에서의 랄프 베어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하지만 마이클이 그가 사이몬 (70년대 음악 게임)의 창조자라고

언급하자마자,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마이클이 오래 전부터 랄프 베어에 대해 이야기했던 일화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그는 몇 년전부터 CGE (고전 게임 전시회)에 랄프 베어가

참석할 예정이라는 걸 알고 흥분을 전혀 감추지 못했다.

마이클은 드디어 그를 만나러 갔지만,아쉽게도 베어는 GCE에 참석하지

못했다.내 기억으론,그 때의 마이클은 매우 실망한 표정이었다.


Good Deal Games와 피닉스:비디오 게임의 흥망성쇠의 저자

Leonard Herman의 인맥을 통해서 마이클은 뉴 햄프셔에 사는 랄프에게

직접 초대받게 된다.


우리는 원래 지난 여름에 가기로 했지만,그 때 나는 폴란드에서 영어 강사

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마이클은 초청장을 받고는 어떻게든 '우리'는 가야한다고 확신했다.

이 여행은 마이클을 위한 것이었다.나역시 이 여행이 기대되었다.

나에게도 베어는 정말로 흥미로운 인물이었다.그리고 어떤 종류의

여행이라도 즐길 자신이 있었다.그러나 기상 채널은 나를 조금

불쾌하게 했다.(여행 이야기는 생략)



(랄프 베어의 집)


우리가 떠날 게 될쯤에 날씨가 잔잔해졌다.그래서 나는 용감하게

고전 게이머인 남편과 함께 모험을 시작했다.

non-gamer로서 나에게 랄프 베어와 이야기하는 날은 매혹적인 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우리는 베어의 집에 도착했고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커피 테이블에 있던 '사이몬'이었다.





마이클과 내가 사이몬의 창조자의 집에서 사이몬을 플레이하면서

사진을 찍는 일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랄프와 그의 아내는 우리들에게 이보다 더한 환대가 없을 정도로

매우 편안하게 대해 주었다.


우리는 그가 현재 작업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비디오 게임에서의 그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물론 마이클은 최초의 콘솔인 브라운 박스와 나머지 발명품들을

기다릴 수 없는 것 같았다.미국 최대의 게임 TV인 G4와 다른 매체에서

최근 인터뷰한 물품들말이다.그가 만든 발명품들은 현재까지 집에

전시하고 있었다.

멋진 뉴 잉글랜드식 점심식사가 끝난 후,우리는

마침내 베어의 발명품이 가득한 지하 사무실로 초정받았다.


지하 사무실은 끝내줬다.마치 아파트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우리는 시작부터 비디오 게임을 선택했다.



우리가 처음 본 브라운 박스는 현재 베어가 새롭게 작업 중인 것이었다.

그런 다음,랄프는 그가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조이스틱을 보여 주었다.

골판지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조이스틱이었다!

확실히 상점에서조차 전혀 찾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이클과 랄프는 브라운 박스 복제품으로 체이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조이스틱에 대한 나의 의구심을 날려 버렸다.


랄프가 1968년에 완성시킨 광선총 '슈팅 갤러리'


베어는 브라운 박스의 주변기기였던 오리지널 광선총의 복제품도

갖추고 있었다.창고 세일로 사온 것 같은 장난감 라이플었지만

그걸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마이클을 보는 건 정말 재미난 경험이었다.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발명품은 Kid Vid 장치다.

아타리 2600의 '말하는' 비디오 게임이다.



또한 우리는 랄프의 수많은 특허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특허권 분쟁으로 수많은 소송에 휘말리게 된 '문서'들도

존재했다.

아타리,액티비전 등과 같은 거물급 회사들의 소송도 있었다.

랄프는 비디오 게임에 정말로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이지만

몇몇 소송은 감당하기 힘든 것들도 존재했다.



(마그나복스 오딧세이의 하키 게임 오버레이를 들고 있는 조안)


(70년대 음악 게임 '사이몬'을 비롯한 여러 발명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마이클과 나는 오리지널 마그나복스 오딧세이와 브라운박스 복제품

을 플레이해봤다.

최초의 콘솔을 만든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가 만든 게임들을 플레이

한다는 건,꽤나 멋진 경험이었다.


(닌텐도 오리사냥의 아버지가 여기 있다.베어는 처음으로 광선총이란 주변기기를

만든 인물이다.그리고 이 광선총이 최초의 주변기기이기도 하다.)


광선총 '슈팅 갤러리'의 지원 게임들


(역사상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인 '브라운박스' 1967년에 등장했다.올해로 40살)

마침내 나는 베어의 모든 발명품으로부터 마이클을 떼놓는데,성공했다.

우리는 위층으로 돌아와서 떠나기 전,약간의 대화를 나눴다.

랄프는 그가 작업 중인 '자서전'을 몇 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독일에서의 유년기 시절과 미국 이주 시절,군복무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자세한 설명은 엑정게에서 제 글 검색하면 됩니다.)

여러분들도 보시다시피,랄프가 비디오 게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를 알고 있는 모든 것일 수도 있지만,그는 놀라운 삶을 살았으며

그 점이 나로 하여금 감명받게 하였다.그는 상당히 친근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그러나 그 내면에는 영화같은 스토리가 가득하다.

뉴햄프셔로 가는 여행은 즐거웠고 마이클을 위해 이번 여행을 했던

점도 즐거웠다.그러나 나는 훌륭하고 주목할만한 인물을 만났다는

것에서 흥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그래서 랄프...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그리고 마이클...당신도 고마워요.

진정한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니까요.

출처:Gooddealgame



마그나복스 오딧세이1의 첫 모델은 10만대가  팔렸다.

그후,PS2처럼 여러 신 모델을 내놨으며 이 모델들을 전부 합치면

35만대 정도를 팔아서 비디오 게임 산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100,200,300,400,그리고 최후의 500까지 총 5번의 모델 체인지를 했다.

    ------------------------------------------ 루리웹의 '바람과 구름과 별' 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

루리웹의 '바람과 구름과 별' 님께서 쓰셨던 글입니다. 이번글도 저번글과 마찬가지로 랄프 베어에 대한 글입니다.

그나저나 부인이 상당히 젊어보이는군요. 전 처음에 딸인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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